[신음하는 한국기업의 현장(2)] 무너진 차이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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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3-26 09:59|본문
중국 광둥성 선전특구는 서쪽으로 주장(珠江), 남쪽으로 홍콩, 북쪽으로 둥관을 끼고 있어 육·해·공 통관지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동안 제조기지 역할과 함께 배후 공업단지 및 광둥성 소비시장의 대외창구와 물류중심 역할을 하면서 광둥성을 세계의 공장 및 중국의 대외교역 중심으로 발전시켜 왔다. '개혁개방 1번지' 선전은 전 세계 500대 다국적기업 가운데 140여개사가 진출해 있다.
선전 시내 중심에 있는 화창다샤. 서울 용산 전자상가처럼 컴퓨터 등 각종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종합상가로,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상가 곳곳을 돌아보니 한산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중국 부동산 붕괴 가능성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선전에서 최고급 주택단지로 꼽히는 난산구 고급 아파트단지를 찾았다. 단지 입구 대로변에는 손님을 끌기 위해 홍보간판이 세워져 있는가 하면 부동산 업소 직원들이 홍보용 피켓을 들고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다. 부동산 중개업체인 중위안디찬 직원 양젠팡은 "지난해에는 이 지역 아파트의 경우 ㎡당 평균 가격이 3만위안을 웃돌았는데 지금은 2만위안 정도까지 떨어졌다"며 "그래도 찾는 손님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선전도 요즘 미국발 금융위기 폭탄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인건비와 원자재값 등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금융위기까지 겹쳐 수출입이 급격히 둔화되면서 최근에는 도산하는 기업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 업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현지에서 교민들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 '좋은 아침' 이재우 사장은 "올해는 대부분 업체들이 돈 벌겠다는 생각을 아예 버렸다"며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둥성 지역 법인 설립 등을 담당하는 물류회사 최모 이사는 "과거엔 투자진출 상담이 많았지만 요즘은 청산 등 향후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선전 시내 중심에서 승용차로 1시간 정도 거리인 시 외곽 롱캉구 컹즈에서 가발공장을 운영하는 보양산업. 이 회사 하원호 부사장은 "갈수록 적자 폭만 커져서 견딜 수가 없다"며 "요즘 사업하는 한국사람들을 만나면 누구나 못살겠다는 소리만 한다"고 푸념했다. 가발의 90%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이 회사는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오더가 급격히 줄어 바이어들을 찾아가 통사정을 해야 할 형편이라고 하 부사장은 털어놨다.
그래서 공장 가동률은 70%만 유지하고, 직원들의 주말 근무나 잔업도 모두 중단시켰다고 한다. 그는 "어쩌다 휴가를 가려고 하면 공장 직원들은 내가 혹시 도망가지 않을까 경계의 눈으로 쳐다본다"며 "최근 사업이 어려워지자 분위기도 험악해졌다"고 말했다. 500여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마네킹을 제조하는 한 업체의 이모 사장도 "미국 프랑스 한국 등으로 수출해 왔는데 금융위기로 최근 수출량이 급격히 줄어 생산라인을 멈춰야 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반도주나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까지 나타나고 있다. 의류사업으로 성공한 뒤 광저우 시내에서 7층짜리 건물을 임대해 1층은 한국식당, 2층은 일식당, 3층 이상은 오피스 건물로 운영해 오던 한 자영업 사장은 지난주 직원들 월급도 주지 않은 채 야반도주했다고 한다. 광저우시 바이윈에서 의류사업을 하던 A씨(50)는 사업부진을 비관하다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앞서 광저우 시내 중심에서 의류매장을 하던 B씨(64)가 매장 상가 7층에서 투신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