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예 역사는 3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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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4-10 11:09|본문
중국 서예사는 甲骨文이 형성된 B.C1300년인 殷나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간주함으로 그 역사는 3300년이 된다.
시대별로 서예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殷(商) (BC 16세기 - 약 BC 1066년)
중국의 역사는 夏나라로 부터 시작되었지만 서예의 역사는 殷으로부터 본다. 이 시기에 갑골문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는 夏나라로 부터 시작되었지만 서예의 역사는 殷으로부터 본다. 이 시기에 갑골문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甲骨文은 BC 13세기에 출현하였으므로 현재 잔존하는 한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갑골문은 예리한 칼날로 귀갑(龜甲)이나 짐승의 넓은 뼈에 새겨 넣었기 때문에 필획이 단순하고 직선적이며 획은 생략이 많다. 사물의 형태를 본따 새긴 것으로 상형문자가 많으 금후 한자 제자의 근간이 된다.
갑골문자의 발견은 상 왕조 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동시에 상 왕조의 휘황찬란한 청동기 제조기술과 문화는 중국 고대 문화를 위한 진일보된 기초를 다져 주었다.
(2) 周 BC (1066년 - BC 771년)
이 시기에 출현한 금문(金文)은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말하는 것으로 주(周) 특유의 의례적인 엄숙함이 있는 가운데 은대의 서풍(書風)을 이어 비후(肥厚)함이 있어 생명의 약동이 보인다.
이 시기에 출현한 금문(金文)은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말하는 것으로 주(周) 특유의 의례적인 엄숙함이 있는 가운데 은대의 서풍(書風)을 이어 비후(肥厚)함이 있어 생명의 약동이 보인다.
대전(大篆)은 서주(西周) 선왕(宣王)때 사관 사주가 문자를 정연하고 획일적으로 하기 위해 고문(古文)을 정리한 것(주문)이다.
(3) 春秋.戰國時代 (BC 770년 - BC 221년)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서로 다른 계급과 계층의 대표적 인물들이 사회 변혁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니,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과 인재 배출의 국면이 출현함으로써 중국 학술사상 찬란한 페이지를 쓰게 된 것이다. 특히 공자 맹자등 유명한 철학가들이 많이 출현하여 동양철학을 정립하게 된다. 이 가운데서 한자는 필사되어 비로서 서예의 법을 갖추게 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서로 다른 계급과 계층의 대표적 인물들이 사회 변혁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니,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과 인재 배출의 국면이 출현함으로써 중국 학술사상 찬란한 페이지를 쓰게 된 것이다. 특히 공자 맹자등 유명한 철학가들이 많이 출현하여 동양철학을 정립하게 된다. 이 가운데서 한자는 필사되어 비로서 서예의 법을 갖추게 된다.
(4) 秦 (B.C.221 ~ B.C.206)
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드디어 혼란하던 정국을 바로잡고 나라를 통일시킨다. 진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중앙집권적 봉건제국이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드디어 혼란하던 정국을 바로잡고 나라를 통일시킨다. 진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중앙집권적 봉건제국이다.
이 시기에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건설하여 변경의 방비를 든든히 하고자 하였으며, 문자와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서 중국을 위해 수많은 공을 세웠다.
이 시기에 통일한 문자가 이른바 小篆이다. 소전은 재상인 이사가 만든 서체인데 전통서체인 주문을 약간 간략화하여 의식적으로 연구하여 고치고 변화시켜 새로만든 서체로서 갑골문, 금문, 주문과 소전을 통틀어 篆書라고 한다.
소전의 구조는 장방형, 획의 굵기가 같고, 사이와 포백이 고르고 형태는 좌우가 대칭을 이루었으며 중심을 잡아서 평행 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문서정리를 위해 주로 대나무와 비단에 글씨를 썼다. 대나무에 쓴 죽간(竹簡)은 갑골에 각(刻)한 것에 비하여 필획이 고르롭고 구조가 잘 짜였으며, 백서(帛書)는 필획이 잘 정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힘차고 일치(逸致)가 있어 서예의 멋을 더해주고 있다.
(5) 漢 (B.C.206 ~ A.D.220)
진에서 나라를 통일하고 문서를 정리하는 가운데서 서사의 편리를 위하여 만들어 낸 隸書가 漢대의 주요 서체로 사용되었다. 隸書는 소전을 간략화한 것이나, 굵기가 균일하지 않고 획의 강약과 조밀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새로운 서체이다.
또한 전각이 발달되어 "漢印"은 금후의 전각연구에 기초를 닦아 주었다.
한대에서는 채륜(蔡倫)에 의해 종이가 발명되면서 초서가 발달하였으며 서론이 발달하고 많은 서예가들이 출현하여 서예가 흥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 최초의 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가 편성되어 문자학 연구의 기초를 제종해 주고 있다.
(6) 魏晉南北朝, (A.D.220 ~A.D.589)
위진남북조시기에 오체가 모두 완성 된다.
해서의 초기 서체인 魏碑體가 출현하고 동진에서는 서승인 왕희지가 탄생하여 해서, 초서, 행서를 완성하고 서예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왕희지는 금후의 서예가들과 서예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위진남북조시기에 오체가 모두 완성 된다.
해서의 초기 서체인 魏碑體가 출현하고 동진에서는 서승인 왕희지가 탄생하여 해서, 초서, 행서를 완성하고 서예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왕희지는 금후의 서예가들과 서예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7) 隋唐 (A.D.581~ A.D.907)
唐은 중국역사상 문학상에서 唐詩라는 하나의 분야를 형성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태종이 왕희지의 서법을 숭상하여 신하들에게 직접 왕희지의 글씨를 연구할 것을 명할 정도 였으므로 唐은 그야말로 문화예술의 전성시대였다. 당은 해서의 전성기를 이루며 해서대가인 구양순, 안진경 등을 배출하였으며, 손과정에 의해 초서가 미를 더하게 된다.
唐은 중국역사상 문학상에서 唐詩라는 하나의 분야를 형성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태종이 왕희지의 서법을 숭상하여 신하들에게 직접 왕희지의 글씨를 연구할 것을 명할 정도 였으므로 唐은 그야말로 문화예술의 전성시대였다. 당은 해서의 전성기를 이루며 해서대가인 구양순, 안진경 등을 배출하였으며, 손과정에 의해 초서가 미를 더하게 된다.
(8) 五代十國과 宋(A.D. 907~A.D.1279)
송에서는 형식보다는 필의를 중시하였으며 개성적, 활달한 서풍이 유행되었다. 소식과 황정견, 미불, 류공권 등 서가들이 출현하였으며 唐대에 못지 않게 서법을 중요시 하였다.
송에서는 형식보다는 필의를 중시하였으며 개성적, 활달한 서풍이 유행되었다. 소식과 황정견, 미불, 류공권 등 서가들이 출현하였으며 唐대에 못지 않게 서법을 중요시 하였다.
(9) 元 (A.D.1206 ~ A.D.1368)
원의 서예에서는 형식을 존중하였다. 왕희지 서법을 연구하여 완성한 조맹부의 송설체가 출현하여 조선의 서예에 영향을 주었다.
원의 서예에서는 형식을 존중하였다. 왕희지 서법을 연구하여 완성한 조맹부의 송설체가 출현하여 조선의 서예에 영향을 주었다.
(10) 明 (A.D.1368 ~ A.D.1644)
형식을 중시한 고전파(문징명. 동기창)와 창조적 변화를 중시한 개성파(장서도, 왕학)가 병행하였는데, 明의 서예가들은 원의 송설체를 계승발전시키는가 하면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넘치는 서예작품을 많이 남기기도 하였다.
형식을 중시한 고전파(문징명. 동기창)와 창조적 변화를 중시한 개성파(장서도, 왕학)가 병행하였는데, 明의 서예가들은 원의 송설체를 계승발전시키는가 하면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넘치는 서예작품을 많이 남기기도 하였다.
(11) 淸 (A.D.1644 ~ A.D.1911)
淸은 고증학과 금석학의 발달로 비학을 존중하는 이른바 碑學派가 출현하였으며, 전서와 예서도 유행하였으며, 전각도 유행하였다. 조지겸, 강유위 등 서예가들이 등장하여 淸의 서예를 발전시켰다.
淸은 고증학과 금석학의 발달로 비학을 존중하는 이른바 碑學派가 출현하였으며, 전서와 예서도 유행하였으며, 전각도 유행하였다. 조지겸, 강유위 등 서예가들이 등장하여 淸의 서예를 발전시켰다.
(12) 중화인민공화국(A.D.1949~현재)
淸 이후 전란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초기에는 중국의 전통예술인 서법이 홀시 되었으나 1980년에 중국서법가협회가 창립되면서 중국의 서법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협회의 회원만 2만명을 넘으며 전업서예가가 출현할 정도로 서법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唐楷를 주장하는 帖學派와 魏碑를 숭상하는 碑學派가 공존하면서 중국의 서법을 새로운 경지에로 이끌고 있다.
淸 이후 전란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초기에는 중국의 전통예술인 서법이 홀시 되었으나 1980년에 중국서법가협회가 창립되면서 중국의 서법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협회의 회원만 2만명을 넘으며 전업서예가가 출현할 정도로 서법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唐楷를 주장하는 帖學派와 魏碑를 숭상하는 碑學派가 공존하면서 중국의 서법을 새로운 경지에로 이끌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서법은 甲骨文이 출현한 BC13세기로부터 발전되었으므로 서법예술은 3천년이 훨씬 넘는 휘황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서법은 중국만의 것이 아닌 동양 특유의 전통예술로 자리매김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