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만만디(천천히)를 바로 알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12 16:38본문
천천히 가는 것은 두렵지 않다.
중국인의 특성으로 종종 '만만디(慢慢的)'가 거론된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니 "[중국어] 행동이 굼뜨거나 일의 진척이 느림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흔히들 '만만디'를 이렇게 '느리다'와 결부시켜 이야기하지만 나는 '묵직하다'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중국인과 협상을 할 때는 그들보다 더 묵직해야 이익을 볼 수 있다. 어느 중국인 사장은 한국인의 사업 스타일에 대해 "당신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모르겠다"며 "스스로 아쉬운 입장에 처해있는 기색이 역력한 사람을 다루는 일은 너무도 쉽다"고 지적해 준 바 있다. "당신이 만만디면 나는 껑지아(便加 ; 더욱더) 만만디"라는 뚝심으로 버텨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재활용 폐기물을 처분할 일이 생겼다. 수집업자는 그것을 가져가는 대신 120元을 주겠다고 흥정했다. 예전의 내 성격이었으면 거기서 200元 정도 얻어내면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터지만, 꾹 참고 수집업자를 돌려보냈다. 작업장의 인부들이 폐기물 때문에 귀찮다고 아우성을 쳐도 들은 척 만 척 하며 버텼다.
다음날 직원을 시켜 다른 수집업자를 알아보는 동안 예전의 수집업자는 다시 제 발로 찾아와 더 높은 가격을 흥정했다. 그렇게 흥정과 협상을 거듭하기를 며칠. 결국 폐기물은 예닐곱 번째의 수입업자를 거쳐 500元이 넘는 가격에 팔려나갔다. 아주 작은 사례이긴 하지만 "나는 급하지 않다, 급한 건 바로 너다"라는 식으로 대하니 승리(?)한다는 작은 교훈을 얻었다.
그런 교훈이 여러 번 쌓이니 인부들과 인건비를 흥정할 때도, 공사 하청을 줄 때도, 사업상 거래를 할 때도 "나는 아쉬운 것이 없다, 아쉬운 것은 당신들이다"는 식으로 상대했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쌓일 일도 없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조금씩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중국에서는 중국의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때론 다른 선진적인 방식을 도입할 필요도 있겠지만, 중국 사업의 기본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묵직하게 나아가는 것'이라는 교훈을 계속하여 깨닫는 요즈음이다.
오늘 안 되면 내일 하고, 내일 안 되면 모레 하고, 내가 못 하면 내 아들이 하고, 이것이 아니면 저것으로 버티고……. 그것이 표면상의 만만디라면, 그런 와중에도 '목표의식'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만만디의 핵심인 것 같다.
엄벙덤벙 잔칫상을 앞에 놓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협상을 시작하더라도 내가 얻어야 할 목표를 잊지 않고 끝까지 대의(大义)를 저버리지 않는 일관성. 나는 늘 웃으면서도 상대의 미소에 쉽사리 현혹되지 않고, 때론 일부러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상대를 안심시키면서 야금야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 나가는 점진적인 태도. 손자병법(孫子兵法)이나 삼국지(三国志)에서 보았던 전략과 전술들이 중국인들의 생활과 기풍 속에 수천 년 동안 은근히 녹아들어 왔음을 느낀다.
부파만, 즈파잔(不怕慢,只怕站) - 천천히 가는 것은 두렵지 않다, 다만 멈추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 말을 중국에서 나의 좌우명(座右铭)으로 삼기로 했다. 짧은 기간에 이것을 가르쳐 준 여러 중국인 사부님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