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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란현 조선족영(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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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2-03-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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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조선말표기법으로 되었습니다. 

 

1. 서란현 조선족의용대대 건립 

1945년 8월 15일 광복후, 서란현(舒兰县) 의 조선족청년 김익(金翊), 최청송(崔青松), 리태연(李泰渊), 송원걸(宋元杰), 정윤국(郑润国), 김세호(金世稿) 등이 골간으로 1945년 10월 27일에 서란성내(城內)에서 조선족의용군대대를 성립하였다. 김우가 대대장직을 맏고 주동적으로 화전(桦甸) 조선족의용군 7지대와 련락을 하였다.

1946년 1월 하순, 화전조선족의용군 7지대 지대장 박훈일(朴勋一)은 정치위원 최명(崔明)을 서란에 파견하여 서란현조선족의용군 대대를 제7지대 8대대로 개편접수하고 김우를 대대장, 최일룡(崔日龙)을 부대대장, 지홍범(池鸿范)을 교도원으로 임명하였다. 대대는 60여명으로 3개 중대로 나누었다.

2. 서란보안퇀 조선족영 탄생

1945년말, 전송(田松) 부대가 서란을 해방한 후, 민주정부는 팔로군 서란유격대의 일부 전사들을 골간으로 46명이나 되는 서란현대대를 조직하였다. 얼마되지 않아 길북군분구(吉北军分区)는 서란현대대와 조선의용군 7지대 제8대대가 합병하여 서란보안퇀(保安團)를 구성하자는 서란현위의 신청을 비준하였다. 원 서란대대가 1영, 제8대대가 2영으로 개편되었고 1946년 3월 15일에 서란현보안퇀 2영 건립대회를 열었다. 대회에서 김유(김중철[金中哲]이라고도 함)를 영장으로, 장교덕(张教德)이 부영장, 지홍범이 부교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로부터 서란보안퇀 조선족영이 영광스럽게 탄생되었다.

얼마 후 현위는 김로흠(金鲁钦)을 교도원으로 임명하고 4, 5, 6 세개 련을 편성했다.

3. 토비 숙청에 참가

서란이 해방된 후 위(僞) “유지회(维持会)” 와 치안대의 일부 잔여들은 금마(金马), 개원(开原), 신안(新安) 등지의 산을 근거지로 삼고 발광적으로 군중 재산을 락탈하며 각 족 인민의 안전을 위협하였다.

1946년 3월 18일, 서란보안퇀 조선족영 4련 부련장 리태연은 한개 패를 이끌고 신안촌 계가툰(桂家屯)에 주둔한 40여명이나 되는 토비를 숙청하라는 퇀부의 명령을 받았다. 

계가툰에 도착한 리태연은 공격 전 적들의 화력 배치를 정찰하니 퇀부의 정보와는 상황이 달랐다. 원래 이곳에 주둔한 토비는 목단강의 사진동(谢振东), 마희산(马希山), 허몽둥이(许大马棒) 등 두목들이 “동북선견대(東北先遣隊)”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자자한 토비들이였다. 그리고 전패(戰敗)한 일본 관동군 잔여까지 끌어 모아 병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무기와 탄약도 충족하였고 곧 바로 소성(小城), 대북(大北), 깡요(缸窑)를 거쳐 강을 건너 길림에 주둔한 국민당군으로 넘어 가려고 하였다. 

당시 4련은 병력이 부족하고 무기란 훈련용 보총이며 탄알도 충족하지 못하였지만 용맹히 적의 진지로 돌진하여 적을 물려쳐 계가툰(桂家屯) 군중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위하였다. 전투중 윤복주(尹福诛), 홍남포(洪南浦), XXX 세명이 전사했다. 그들의 시체는 후에 서란현렬사릉원에 안장되였다.


서란렬사릉원서란렬사릉원

1946년 3월, 토비두목 장평추(张平錐)는 반동 치안대 무장 1000여명이나 모집하여 “국민당지하선견군”이라고 이름을 짓고 왕툰(汪屯)에 주둔하였다. 그는 백기곽가(白旗霍家)부두에서 송화강을 건너 장춘지구에 있는 국민당에게 의탁하려고 하였다.

이 정보를 정탐한 동북민주련군(東北民主聯軍) 제6사 2퇀 퇀장 강호(江湖)는 1000여명을 거느리고 서란에서 장평추 부대를 가로 막았다. 이때 서란보안퇀도 명령을 받고 조선족영 교도원 김로흠이 300여명을 거느리고 왕툰 일대의 토비숙청에 나섰다.  3월 16일 6시 쯤 전투가 시작되자 동북련군 8련과 조선족영은 동, 남, 서 3면으로 공격하였다. 포위된 적들은 일부는 소멸되였고 일부는 툰으로 달아나 큰 뜨락과 견고한 집을 방어진지로 삼고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전투는 이틋날(3월 17일) 새벽까지 지속되였다. 이때 무슨 원인인지강씨네 집에 설치한 토비 지휘부에 갑작이 불이 났다. 뜨락 안에 갇힌 적들은 지체할세라 황급이 활활 타오르는 집에서 밖으로 철퇴하기 시작하였다. 툰에서 다시는 견지할 수 없는 일부분의 적들은 200여구의 시체와 무기를 버리고 서남 방향인 창스촌(苍石村)으로 달아났지만 결국 소멸되고 말았다. 

그 외 대부분 적들은 오금(乌金)으로 달아났지만 민주련군 72퇀이 이미 곽가부두(霍家碼頭)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백기(小白旗) 부두에서 송화강을 건넜다. 그러나 아군의 추격하에 구태(九台)현 마창툰(马场屯)에서 전부 섬멸되였다. 이번 전투에서 조선족영은 아주 영용히 싸웠다.

이어 조선족영은 신속히 소성구(小城区) 상영촌(上营村)에 둥지털고 있던 토비를 몰아내고 철도를 넘어 조양구(朝阳区)에서 길북군분구 1퇀의 한개 련과 회합하였다. 6월 5일부터 6일까지 쌍룡교(双龙桥)와 양가교(杨家桥)에 침입한 토비 100여명을 포위 공격하여 3명을 죽이고 1명을 부상시켰다. 아군도 3명이 희생되였다.

6월초, 국민당 선두부대 71군 88사의 한개 퇀이 동북민주련군 제1종대(38군)에 전멸된 후 부득히 잠시 전투를 멈추고 송화강 북안인 토라이조(陶赖昭)와 우라제(乌拉街) 두 곳을 점령하였다. 거세찬 제2송화강은 서란을 포함한 북만해방군의 천연적인 병풍이 되여 국민당군과 강을 사이두고 남북에 각기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치타무(其塔木,九台境内)에 자리 잡은 국민당군은 경상적으로 강변에 나와 소란을 일으켰다. 그중 서란보안퇀에 혼입했던 토비두목 요계주(姚继周)는 변절한 후 몇 십명 패잔병들을 모아 “요퇀(姚团)”이란 대오를 조직하고 자주 강을 건너와 각 족 인민과 당정 공작인원을 박해하고 군중공작과 토지개혁을 파괴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족영은 백기(白旗), 시하(溪河) 일대에서 구간부와 자위대의 배합(配合)하에 인민의 생명과 재산, 당정기관과 토지개혁 성과를 보위하는 강변 수호 임무를 맡게 되였다. 

어느 하루 이른아침, 동고촌(东孤村) 민병 대장 왕덕생(王德生)의 형 왕덕운(王德云)이 “요퇀”에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들은 조선족영은 시와이즈(西崴子)촌까지 달려가 격전을 벌려 적을 물리치고 왕덕운과 기타 군중들을 구하였다. 

어느 하루 요퇀이 백기촌을 기습하자 타도(打倒)되었던 지주들은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그들을 위해 복수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이 정보를 입수한 조선족영은 당지 민병의 배합하에  “요퇀”을 쫓아내고 촌 간부와 군중을 구하였으며 지주들을 잡아 정부로 압송해 처리하게 하였다. 이번 전투에서 한(韩)패장 등 3명 전사가 영용하게 희생되였다.

1947년초, 동북민주련군은 국민당이 남만 림강(臨江)을 진공하는 틈을 타서 세번 강남을 넘고 네번 림강을 보위한 전역을 펼쳤다.

1월 5일 저녁, 서란보안퇀은 강을 건너 주력부대와 함께 석툰(石屯)에서 국민당군 지원병을 저격하여 치타무전투의 승리를 보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동북민주련군이 치타무를 공격하는 것은 “남쪽을 타격하고 북쪽을 당기”는 작전방침으로 남만 림강지구를 보위하는 통일적인 행동이었다. 북만의 아군은 대군을 령솔하여 우세(優勢) 병력으로 남으로 공격하는 전술로 장춘과 영길(지금의 길림시)의 국민당군이 철퇴하지 않으면 않되게 하였다.  

치타무는 전략요지로써 국민당 신1군 113퇀 등 주력이 고수하고 있었다. 아군은 선후로 동북 13사 7퇀, 동북 7종대 20사 58퇀, 47군 137사 49퇀 등 주력 부대를 집결하였다. 치타무 가도내(街道內)의 적들은 튼튼한 토찌카에서 죽기로 방어하였기에 전투는 아주 치렬하였다. 때는 겨울이라 적들은 추운 겨울의 특점을 리용해 토찌카 밖에 물을 뿌려 얼음판을 만들어 공격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치타무에 고수하고 있는 국민당군은 비록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튼튼한 방어체계와 경형무기로 기염이 드세게 고수하면서 지원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조건하에 서란보안퇀이 원병을 저격하는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임무도 더욱 무겁게 되었다. 

보안퇀 2영(조선족영)의 4련과 6련은 퇀부의 명령대로 송화강반에 남아 강을 건너는 주력부대를 엄호하고 5련은 오전갑(吴殿甲), 려사영(吕士英)의 인솔하에 1영, 경위련 1패와 함께 말파리를 타고 강을 건너 구태현 치타무로 향했다.

하루밤 급행군으로 7일 아침에 구태현 경내인 석툰에 주둔하고 있는 “요퇀”과 맞부딛쳐 전투를 벌렸다. 전투가 시작되여 적 10여명을 격살하자 두목 요계주는 50~60여명 잔여 부대를 거느리고 남산으로 도망갔다. 

8일 아침, 해가 동산마루에서 떠오르자 몇발의 포탄이 아군 522퇀 진지에 떨어졌다. 이어 국민당 왕패(王牌) 부대인 신7군 88사 수 백명이 대포와 기관총의 엄호하에 량측에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위급한 시각에 길북군구 1퇀과 서란보안퇀 1영이 우측으로 출격하여 적들을 물리쳤다. 적들은 패하여 석툰으로 도주했다. 

이 때 길북군구 조리회(曹里怀) 사령은 보안퇀 기병련이 석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백여기 기병들이 화살처럼 석툰을 향해 달렸다. 적들은 민가 지붕에서 기관총을 걸고 미친 듯이 사격하였다. 비발치듯한 총알이 날아들었지만 근근히 전마(戰馬) 한 필 밖에 명중하지 못하였다. 기병련은 련장 왕청원(王清元)의 인솔하에 석툰에 진입하여 수류탄과 군도로 번개같이 수 백명의 적들을 소멸하였다.

3일 간 밤낮 지속된 전투로 치타무 전투는 승리적으로 결속되었지만 서란적(籍) 지전원 26명(그 중 2명이 담가대임)이나 희생되였다. 이번 전투에서 조선족영은 죽음을 겁내지 않고 용감히 싸워 원병 저격전 임무를 원만히 완성하였다.

 

4. 남정북전

(1) 우라제 공격전의 승리

세번 강남을 건너고 네번 림강을 보위하는 전역이 결속되자 동북련군은 전략방어로부터 전략반공계단에 들어서서 하기공세를 전개하였다. 

1947년 3월에 서란현보안퇀과 영길현보안퇀이 합병하여 동북민주련군 독립3사 제8퇀으로 개편되였다. 조선족영은 이 퇀의 3영으로 개편되였고 영장은 장교덕이였다. 하기공세 중 8퇀의 첫번째 임무는 우라제(烏拉街)  공격전의 주공부대였다. 우라제는 송화강 북안의 주요 거점이다. 이곳에 주둔한 국민당은 경상적으로 주위 아군을 소란하였다.

1947년 음력 2월 20일, 우라제에 주둔한 몽고기병대와 보병 한개 련은 서란현 시허(溪河) 남문으로부터 부채형으로 포위하며 덥쳐들었다. 그들은 시랑허(溪浪河), 시랑코즈(溪浪口子), 쪼툰(赵屯)에서 집집마다 수색하면서 농회간부를 잡았다. 농회주석 동재(董才)와 관범룡(关凡龙), 조문상(赵文祥) 등 6명을 붙잡아 길림감옥에 가두었다.

1947년 섯달 27일, 우라제에 주둔한 30여명 적들이 시허쐉인퉁(溪河双印通)촌에서 기간민병 손성문(孙成文)을 잡아 갖은 악형으로 죽였다. 이 사건은 간부와 전사들에게 뼈에 사무치는 분노를 일어켰다. 하기공세부터 아군 독립 3사 8퇀은 두차례나 우라제를 공격하여 적 850명을 사로잡고 100여명을 격살했다. 그러나 우라제 거점은 점령하지는 못하였다. 

1947년 10월 중순, 아군의 강대한 동기공세가 시작되어 조선족영은 명령을 받고 동북 10종 29사 83퇀, 독립 15사 4퇀, 동북 1종 3사 8퇀 등 부대와 다시 우라제를 공격하였다. 

조선족영은 “백화점장대(百花点将台)”를 공격하는 임무를 받았다. 적들은 방어선에 넓이 1.5장(丈), 깊이 1장이나 되는 전호를 두갈래 파고 밑에는 뾰쪽한 참대나 쇠꼬챙이를 박아 놓아 공격하기에 어려움이 아주 많았다. “점장대” 내각의 토치카는 화력이 맹렬해 전투는 몇날 며칠이 걸렸고 우리 군은 200여명이나 되는 상망자가 생겼다. 그러나 조선족영은 영용완강하게 싸워 끝내 “백화 점장대”를 점령하였다. 

이 전투에서 8련 지도원 김의근(金义根), 9련 부련장 김부근(金富根), 지도원 김수영(金寿永) 등 지휘자들이 장렬히 희생되였고 8련 련장 리인소(李仁苏)도 부상을 입었다. 전사 문봉학(文凤鹤)은 비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토치카까지 기여가 수류탄을 토치카 총구멍으로 밀어넣어 폭파시킴으로 전진의 길을 개척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이 공격전에서 장열하게 희생되였다. 

 

전투가 결속되자 길북군분구 사령 장관재(张关才), 부사령 뢰진(雷震), 사 정치부 주임 조천영(赵天永) 등 지휘관이 친히 전투 현장에 와서 승리를 축하하며 영장 장교덕, 7련 련장 현의남(玄义男), 전사 문봉학에게 대공 1차를 기입하였다.

(2) 공주령 해방 전투에 참가

동북민주련군이 하기와 추기(秋季) 두차례의 공세로 적 15만명을 소멸하고 59개의 성진(城鎭)을 함락해 국민당은 부득불 금주, 심양, 사평, 장춘, 길림 등 34개 도시에 상대적으로 좁은 구역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방어 태세를 취하였다. 

그때 우리 부대가 신속히 확대되는 새로운 형세하에 독립 3사를 제10종대 29사로 개편되였고 원 8퇀은 86퇀으로 개편되였지만 조선족영은 여전히 제3영이였다.

1947년 12월 15일, 동기공세가 시작되자 제10종대는 돌연히 바쿠(法库), 장우(彰武) 등 현성을 포위하였다. 국민당군은 세 갈래로 지원병 15만명이나 출동시켰다. 조선족영은 형제 부대와 함께 공주령 지구에서 1948년 1월 7일에 적 좌로군 주력을 소멸하였다. 전투는 아주 치렬해 포위와 반포위 작전은 반복적으로 진행되였다. 그러나 조선족영은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 용맹히 돌진하여 형제 부대와 함께 공주령을 해방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족영이 최후의 승리를 보게 된 사람은 9련의 150명 지전원 중 3명 밖에 되지 않았다.

반장 장덕렬(张德烈)은 반복적인 돌격 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터지지 않은 적이 쏜 박격포탄을 주어들고 도화선을 뽑고 달려드는 적에게 뿌렸다. 포탄의 터지면서 적들의 시체는 사방으로 날렸다. 당시 그는 16곳이나 부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승리할 때까지 견지하였다. 그의 사적은 콰이반(快板), 재담과 극으로 엮어져 전군에 광범히 선전되였다. 이번 전투에서 영장 장교덕은 또 대공을 세웠으며 반장 장덕렬은 전투영웅 칭호를 수여 받았다.

(3) 료심전역에 참가

공주령을 해방하는 전투가 결속되자 조선족영은 부대를 따라 바쿠(法库), 개원(开原)을 해방하는 전투에서 적 49군 79사와 26사를 섬멸하였다. 동북군은 3개월의 동기공세에서 적 15만 6천명을 섬멸하고 18개의 성진을 해방하였다. 국민당은 장춘, 심양, 금주 등 몇개의 고립된 거점을 점령하고 있었을 뿐이였다.

동기공세가 결속되자 조선족영이 소속된 퇀은 반 년 사이에 개원에서 구사회와 반동파가 로동인민에게 가져다준 고통을 하소연하고 계급, 투지, 공작 세가지를 검사하는 방법으로 신식 군사정비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사격, 육박, 수류탄 던지기, 폭발, 토목작업 5대기술을 련습하였으며 모주석의 《목전 형세와 우리의 임무》에서 제출한 “10대 군사원칙”을 학습하여 전술 수평을 제고하였다.

1948년 9월에 료심전역(遼沈戰役) 이 시작되자 10종대 일부는 흑산(黑山), 따후싼(大虎山) 저격전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조선족영은 흑산 주 진지로 영용하게 돌진하여 적 원병과 싸웠다.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국민당군 주력인 신1군, 71군, 신6군 169사와 207사가 번갈아 진공했지만 영용하게 싸워 승리적으로 저격전 임무를 완수하였다. 26일에 적후 형제부대와 함께 총공격을 하여 국민당 제9병퇀을 흑산 동쪽지구에서 포위 섬멸하였으며 신1군과 신6군도 이곳에서 섬멸하였다. 조선족영이 소속된 퇀은 적 병퇀사령 료요상(廖耀湘)을 사로 잡았다.

료심전역에서 적 47만명을 섬멸하고 전 동북을 해방하였다. 이 전역이 끝나자 조선족영은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47군 104사 419퇀 3영으로 개편되였다.

4) 평진전역(平津战役)에 참가

1948년 11월 28일, 조선족영이 소속된 퇀은 북진(北镇)에서 산해관(山海关)을 지나 신하(新河), 탕구(塘沽) 방향으로 전진하였다. 목적은 탕산(唐山)과 천진을 수비하고 있는 적들이 바다 쪽으로 도망할 가능성이 있기에 시간을 다투어 매일 백여리 급행군하였다. 적들의 퇴로를 끊는 것은 그들의 주요 임무였다. 적의 퇴로를 끊자면 반드시 신하와 탕구 사이의 철교를 점령해야 했다. 하루 낮, 이틀 밤 급행군으로 순리롭게 이 철교를 점령하여 적들의 퇴로를 끊었으며 천진 쪽에서 달라드는 국민당 지원군도 막았다.

1949년 4월, 전략진공계단에 들어선 해방전쟁시기 조선족영이 소속된 제4야전군은 매일 백여리 속도로 중남지구를 향해 진군하였다. 그들은 전군과 함께 호북성 의창시(宜昌市)를 해방하는 전투에서 적군을 섬멸하였고 두목 송희렴(宋希廉)을 생포하기까지 하였으며 군함 6척과 대량의 군사물자를 로획하였다.

5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중남으로 진군하는 좌, 중, 우 3로 대군은 (조선족영은 좌로군에 속함) 각종 곤난을 극복하고 적 40여만명을 소멸하고 호남, 호북, 강서, 광동, 광서 5성을 해방하여 우군과 련합하여 전략추격 임무를 원만히 완성하였다.

(5) 항미원조 전쟁에 참가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이 폭발하자 서란조선족영도 부대를 따라지원군으로 조선에 나갔다. 조선에 도착한 후 조선족영은 조선인민군 제18련군에 편입되였고 장교덕이 련대장에 임명되였다. 련대는 장교덕의 지휘하에 전투마다 영용불굴하고도 용감히 싸웠다. 이 련대는 전공이 혁혁하여 조선로동당중앙은 전투영웅련대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다. 련대장 장교덕은 전투영웅칭호를 수여 받았고 허다한 지전원들도 공을 세웠다. 18련대는 3일만에 3.8선을 넘어 형제부대와 함께 단숨에 서울까지 쳐들어 갔다. 경황한 미군과 리승만 군대가 황급히 달아나자 18련대는 수원까지 뒤를 쫓았다. 그러나 장교덕은 전투 지휘 중 적의 기관총에 맞아 불행하게 희생되였다.

조선족영은 서란민주정권을 보위하기 위한 토비숙청이나 전 동북과 중국을 해방하는 전투에서 불후의 공훈을 세웠다. 그들은 국제주의 의무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항미원조전쟁에서도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조선족영은 영용불굴하고 슬기롭게 싸우는 영웅부대라고 불리움에 손색이 없다. ☆      

 

주해 : 

1. 서란현(舒兰县): 지금의 길림시 소속의 현급 시.

2. 화전(桦甸): 지금의 길림시소속의 화전시.

3. 유지회(维持会): 항일전쟁 초기 일본침략자들이 점령구 내에서 한간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임시성적인 지방괴뢰 위정권(伪政权)이다. 유지회는 과도형식으로 위정권이 정식으로 정권을 건립한 다음에는 인차 와해된다. 여기서 말하는 유지회의 잔여란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하여 위정권은 와해 되었지만  여전히 잔재해 있었던 유지회의 일부 세력을 말한다.

4. 우라제(烏拉街): 오랍가, 즉 길림시 용담구 우라제 진.

 

 

왕세화(王世华) 정리,  번역: 배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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