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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영웅 조조의 인재관: 유재시거(唯才是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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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19-04-09 18:38 조회 :1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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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영웅 조조의 인재관: 유재시거(唯才是擧)

  작은 전기회사이던 ‘마쓰시타 전기제작소’를 세계 굴지의 대기업 ‘파나소닉’으로 키워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사업은 사람이 전부다』라고 하였는데, 유능한 인재를 선발 (발탁)하는 것이 회사의 절대적인 성공요건 이라는 이야기다.

 

'유재시거'는 "오직 재능만이 추천의 기준이다."라는 뜻으로 ‘才’는 ‘人才’이고, ‘擧’는 '천거(薦擧)‘입니다. 

 

이것은 '唯才是用'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능력이 우수한 사람만을 우대한다는 조조의 인재 등용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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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바이두

 

조조(曹操, 155-210)는 위나라를 건국했고 유비, 손권과 함께 삼국시대의 주역이지만, 그야말로 '흙수저'출신 이었다. 

그에 대한 인물 평가는  “치세에는 능신이요 난세에는 간웅”이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비록  부유한 환관 집안에 태어난 덕에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할 수 있었지만, 그는 평생 외모와 신분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환관 집안 출신이라는 점, 얼굴이 못생겼다는 점 때문에 가문과 외모를 중시하는 후한 말 정국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인재에 대한 욕심이 커서 210년 구현령(求賢令)을 반포하여 공개적으로 천하의 인재를 널리 구하였다.

 

 조조는 능력만 있으면 남에게 욕을 먹거나 말거나 주저 없이 발탁했다.

 

“천하에 묻혀 있는 인재를 찾아내라. 오직 능력만으로 천거하라. 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중용할 것이다”고 천명하였다.  순유, 순욱, 정욱, 곽가, 가후, 최염 등 그야말로 당대의 인재들이 수도에 몰려들었다.

 

 조조가 내세운 이 원칙은 주위의 평판이나 도덕성보다는 재능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였다. 

 

 사실 도덕성(인간성)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요즘의 상황과는 맞지 않겠지만 승자와 패자, 아니 국가의 존망이 좌우되는 당시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조조의 인재관은 한마디로 불념구악(不念舊惡)이었다. 과거의 원한을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적의 편에 있던 가후와 장수 조차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신의 집안을 능멸한 진림까지도 기꺼이 참모로 기용하였다. 신분이나 지위 가문에 상관없이 훌륭한 인재를 발탁했다.

 

그래서 천하의 인재들이 그의 휘하에 모여들어 90여 명의 개세지재(蓋世之才 : 세상을 뒤덮을 만한 인재)가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조조의 '유재시거'라는 인재 등용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준마(駿馬)는 힘(力)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덕(德)을 칭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驥不稱其力,稱其德也-헌문-). 

 

 즉  사람이 아무리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덕이 없으면 존중받을 수도, 기용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 이세민이 신하  ‘멘토’인 위징에게 관리 선발의 기준에 대해 묻자,  “난세에는 능력만 있어도 되지만, 태평성대에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대답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인재 발탁시 '능력 중시'와 '도덕성 중시' 가운데 어느 측면을 중시 하는지에 따라   발탁 기준이 달랐다.  

 

아무튼 냉혹한 승부사인 조조가 자신의 시대를 열고, 아들 조비를 통해 위나라 창업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능률과 효율 중심의 인재관을 견지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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