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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승부를 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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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19-05-14 08:19 조회 :15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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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전選戰 

- 인재가 승부를 가를 수 있다 - 

 

 

용병(경영) 원칙 

 

적에 맞서 싸울 때는 반드시 용장과 정예병을 선발하여 이들을 선봉 부대로 삼아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적의 예봉을 꺾기 위해서이다. 

《손자병법》에 “정예 장수와 병사를 선발하지 않은 군대는 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사 사례 

 

동한 말엽 헌제獻帝 건안 12년인 207년, 조조曹操에게 쫓겨 상곡上谷으로 달아난 원소袁紹의 아들 원상袁尙, 원희袁熙 형제는 북방의 이민족 오완烏桓의 무리를 이끌고 자주 변방에 침입하여 피해를 끼쳤다. 이에 조조는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군을 출동시켰다. 조조의 출정군은 여름철인 음력 5월에 무종無終에 도착했는데, 7월이 되자 큰비가 내려 강물이 범람하여 통행이 곤란해졌다. 게다가 오랑캐들이 계곡의 요로를 막고 있어서 대군이 진출하기가 어려웠다. 조조가 이를 염려하자, 함께 종군하던 전주田疇가 향도嚮導(길잡이)를 자청하면서 말했다. 

 

“이 통로는 여름과 가을이면 언제나 강물이 불어나 얕은 곳이라고 해도 수레와 말이 통과하지 못하고, 또 깊은 곳은 선박이 다니지 못할 정도입니다. 옛 우북평군右北平郡 소재지가 평강平岡에 있는데, 그 통로가 노룡盧龍을 거쳐 유성柳城으로 통합니다. 그 길이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지만 지름길이 남아 있습니다. 오랑캐들은 우리가 장차 무종을 통과할 것이라는 생각에 진군하지 않고 뒤로 물러간 상태라 수비가 허술할 것입니다. 만일 아군이 조용히 회군하여 노룡을 거쳐 백단白檀의 험한 길만 넘는다면 무인지경이 됩니다. 그렇게 진출하면 길은 가까워지고 불편하지도 않을 것이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저들을 신속히 공격하면 싸우지 않고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전주의 이 말을 듣고 좋은 계략이라고 하면서, 즉시 대군을 이끌고 돌아가는 척했다. 그러면서 큰 나무를 물가 길 옆에 세운 다음 ‘지금은 여름이라 길을 건널 수 없으므로 기다렸다가 겨울에 다시 오겠다’라는 글을 남겨 두었다. 순찰병은 이를 보고 정말로 대군이 돌아간 줄로 믿었다. 

한편 조조는 전주로 하여금 휘하 군사를 거느리고 향도로 진군케 했다. 조조의 군사들은 서무산徐無山을 오르는데, 산길을 뚫고 골짜기를 메우면서 5백여 리를 진군하여 백단을 넘고 평강을 지나 우북평군 경계에 있는 선비鮮卑 부락을 지나 동쪽으로 유성을 2백여 리 남겨놓은 지점까지 접근했다. 

원상과 원희는 그제야 조조군의 진격 사실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오환의 왕 답돈蹋頓과 요서 지방 흉노족의 추장인 누반樓班, 그리고 우북평 지방의 추장인 능신저지能臣抵之 등과 함께 수만 명의 기병奇兵을 이끌고 조조 군을 맞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8월, 조조가 백랑산白狼山에 올랐다가 갑자기 오랑캐 군과 마주쳤는데, 그 수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조조의 군사들은 후미에 있는 전차 부대를 호송하느라 병력이 분산되는 바람에 실제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병력이 적었고, 군사들 중에서도 갑옷을 입은 자가 적었다. 많은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조조는 당황하지 않고 높은 고지에 올라가서 적의 형세를 관찰했다. 적의 진용이 미처 정돈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조조는 원상과 원희의 군대를 선제공격했다. 명장 장료張遼(162~222)의 공격을 시작으로 조조 군대는 답돈과 오랑캐 부족의 이름 있는 왕을 비롯한 여러 명을 참수한 것은 물론 지역 호족과 원씨 형제 군사 20여만 명을 항복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삼국지》 <위서> 무제기 제1) 

 

조조는 용병의 큰 원칙을 잘 알고 있었던 전략가였다. 요동의 원상과 원희 세력을 공격하면서 그는 뛰어난 장수와 정예병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사마천학회 이사장 김영수 교수 저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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